[문제의 발단]
1970년대 초반 분말 이유식 제조업체들이 제품설명서를 읽지 못하거나 제품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공격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침으로써 개발도상국의 유아 사망률이 높아졌다는 의혹이 일었다. 이유식 오용과 유아 사망률 사이에 상관관계가 형성된다는 주제에 대해 여러 국제회의에서 의료 전문가•업계 대표•정부 공무원들이 논의를 시작하였지만, 이 문제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아직까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1974년 영국의 한 자선단체(War on Want)가 ‘유아 살인자(The Baby Killer)’라는 28쪽짜리 팸플릿을 발행했다. 이 팸플릿에서는 두 다국적기업인 스위스의 네슬레와 영국의 유니게이트가 아프리카에서 무분별한 이유식 마케팅 활동을 벌이는 점을 강도 높게 비난하였다. 1년 뒤 독일의 한 시민단체(the German-based Third World Working Group)가 ’유아 살인자’라는 팸플릿 내용 중에서 네슬레 관련 내용 만을 뽑아 ‘네슬레가 아기들을 죽이고 있다(Nestle Kills Babies)’는 제목으로 독일어 번역본을 출간하면서, 네슬레가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행동’을 했다며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네슬레 본사 간부들은 몹시 분노했으며 시민단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이 재판은 2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비록 네슬레가 소송에서 이기기는 했지만 법원은 네슬레에게 현재의 마케팅 방법을 재검토하라고 충고했다.


[쟁점 : 제품 오용과 마케팅 활동]

* 올바른 제품사용에 부적합한 시장환경
개발도상국의 대다수 소비자들은 가난하고 열악한 공중위생 환경 속에서 생활한다. 그리고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데다 문맹이어서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 따라서 이유식 오용은 필연적인 결과인 것처럼 여겨진다. 물은 오염된 강이나 공동우물에서 길어다 쓰며 또한 오염된 통에 물을 담아온다. 일반 서민들로서는 냉장고는 꿈도 못 꾸는 형편이며 연료비는 매우 비싸 감당하기 힘들다.
결국 분말로 된 이유식을 오염된 물에 섞어서 탈 뿐만 아니라 소독도 안된 우유병에 담는다. 게다가 엄마들은 이유식을 좀더 오랫동안 먹이기 위해서 물을 더 넣어 양을 늘리기도 한다. 개발도상국에서 모유 수유가 줄고 분유 사용이 증가하는 경향에 대해서 연구자들은 3가지 이유를 제시하였다.
첫째, 사회문화적인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 이는 개발도상국의 도시화와 사회풍속의 변화, 그리고 고용 이동성의 증가라는 사회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처음에는 개발도상국의 고소득층이 서구의 생활방식을 모방하는 차원에서 이유식을 구입하였는데,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는 행동이 마치 상류사회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면서 저소득층도 서둘러 이 행렬에 동참하기 시작하였다.
둘째, 모유 수유에서 분유로 전환하게 된 데는 전문 의료인들도 한 몫을 담당했다. 여러 종합병원과 개인병원에서 이유식을 추천했던 것이다.
셋째, 이유식 제조업체들의 마케팅과 판촉활동을 들 수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3개월 된 아기의 80% 정도가 모유 수유를 하고 있었는데 이 수치가 1971년에는 5%로 떨어졌다. 1966년 멕시코의 모유 수유 비율은 6년 전에 비해서 40%가 하락했다.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 품질관리의 문제
1977년 3월 콜롬비아 종합병원 신생아실에서 사망자가 갑자기 증가하였다. 네슬레 공장의 박테리아가 원인이라는 사실이 발견되었지만 이미 25명의 영아가 사망한 뒤였다. 1977년 호주 보건부는 네슬레의 이유식을 섭취한 134명의 영아가 심각한 질환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발표했다. 네슬레의 자체 조사 결과 액체 우유를 분말 형태로 만드는데 사용되는 스프레이 건조기에 균열이 생겼으며 여기에서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키는 살모넬라균의 변종 박테리아가 발견되었다. 네슬레는 이러한 사실을 주 보건부에 통보하지 않았으며, 또한 기구를 소독만 한 채로 8개월 동안이나 문제의 건조기를 가동했는데 이 기간에도 박테리아가 계속 발견된 것으로 드러났다.

* 제품 오용에 대한 비난
네슬레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개발도상국가에서 이유식 제품을 판매하려 했다는 이유로 네슬레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다른 대안 식품에 비해 이유식 제품이 가지고 있는 효능을 무시하는 것도 사실이다. 식수 오염 문제는 상업용 이유식뿐만 아니라 잡곡과 쌀로 만든 죽 같은 여러 대안 음식에도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곡물로 만든 죽의 경우 영양가가 낮을 뿐만 아니라 식수오염과 요리에 사용되는 식기오염 그리고 영양 결핍까지 더해져 몇 배의 나쁜 결과를 낳게 된다. 또한 개발도상국가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오염된 식수를 이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식수 오염에 대한 걱정 없이 집에서 나오는 물로 이유식을 안전하게 타서 먹일 수 있다.

* 네슬레의 마케팅 활동에 대한 비난
네슬레의 이유식 판촉활동에 대한 비난은 다음과 같다.

-이유식 제품이 개발도상국가의 신생아 사망률에 영향을 주었다.
-신생아용 소책자에서는 모유 수유에 대한 내용을 다루지 않거나 아주 적은 지면만 할애하고 있다.
-언론 홍보활동을 통해서 가난하고 문맹인 산모들이 모유 수유보다는 이유식을 먹이도록 은근히 유도하고 있다.
-광고에서 모유 수유를 구시대적이며 불편한 방법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무료로 선물과 샘플을 주면서 산모들이 이유식을 먹이도록 직접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병원에 부착된 포스터와 팸플릿 그리고 우유 간호사(milk nurse)들을 통해서 이유식이 마치 ‘협회의 승인’을 얻었거나 ‘협회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심어준다.
-이유식 가격은 대부분의 소비자들에게는 여전히 무척 비싸기 때문에 산모들이 이유식을 희석시켜 먹이는 문제가 발생한다.


[네슬레에 더욱 불리해져가는 상황]
1970년대 초반 이후 이유식 회사들은 여러 단체로부터 이유식 판촉활동과 광고활동을 줄이라는 압력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었다. 이유식업계에 대한 비난이 점차 거세지고 모든 상황이 업계에 불리해지자 네슬레를 포함한 9개 이유식 회사들은 1975년 국제이유식기업협회(ICIFI : International Council of Infant Food Industries)를 설립하고, 판촉활동을 점차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제품설명에 항상 모유가 최고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광고에서 이유식은 모유를 보충하는 제품이라고 표현하고, 광고에는 가능하면 전문가의 조언을 넣도록 하며, 간호사 복장은 직업 간호사만 착용하게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업계 자율적으로 규칙을 정하는 등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이러한 자율적인 규칙을 위반한 사례들이 많은 것으로 드러나기도 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9개 나라들에서 조직적인 불매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불매운동은 이유식업계 전체가 아니라 네슬레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는데, 그 이유는 네슬레가 전세계 시장의 50%를 차지하는 거대기업일 뿐 아니라 동종 업계의 다른 회사들에 비해 안 좋은 소문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불매운동 참가자들은 다음과 같은 4가지 요구조건을 내걸었다.

-우유 간호사 제도를 전면 중단할 것
-무료 샘플을 배포하는 행위를 중단할 것
-의료업계를 대상으로 하는 이유식 판촉행위를 중단할 것
-이유식 제품의 소비자 판촉과 광고를 중단할 것

1979년 말경에는 미국 전역에서 450개 이상의 사회단체와 종교단체가 불매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수천만 명의 시민들이 네슬레 제품의 슈퍼마켓 진열대 철수를 촉구하는 탄원서 등 여러 가지 서류에 서명하였다. 일부 식료품점에서는 동의의 표시로 네슬레의 대표적인 커피 제품인 테이스터스 초이스를 진열대에서 치우기도 하였다. 불매운동은 대학 캠퍼스에서도 일어났다. ‘네슬레를 타도하자’라는 슬로건 아래 밀크 초콜릿부터 차, 커피, 핫초콜릿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불매운동은 확실한 효과를 나타냈다. 직접적으로 네슬레의 매출과 수익이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는 이 회사에 대한 비난 여론을 구체화시키고 정부의 개입을 유도하기에 이르렀다. 즉, 뉴기니 정부는 1979년 여름 아기에게 이유식을 먹이는 것을 제한하는 엄격한 법률을 제정했다. 다른 나라에서도 모유 대용식품에 대한 마케팅과 광고를 줄이기 위한 법률을 제정하기 시작했다.


[네슬레의 반격]
네슬레는 불매운동이 증가하고 회사에 대한 무수한 비난이 떠도는 것은 잘못된 PR 활동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PR부서를 기업책임실(Office of Corporate Responsibility)로 격상시키고 세계 최대의 PR회사를 고용하여 적극적인 PR 공세를 펼쳐나갔다. 미국의 성직자들에게 그들이 네슬레를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30만 통 이상 우편으로 발송하는 등 다양한 PR 활동에도 불구하고 사태는 개선되지 않았고 회사를 비난하는 세력들도 잠재우지 못했다.
결국 1981년 네슬레는 PR을 담당하던 두 기업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스스로 잃어버린 명성을 회복하기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인간적이고 책임있는 기업으로서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한 조치 가운데 주요한 것들을 보면 아래와 같다.

-모유 대용식품 마케팅에 대한 WHO 규정을 인정한다. 네슬레는 자발적으로 대중들에 대한 광고를 금지하고 산모들에게 샘플을 돌리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네슬레가 WHO의 규정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음을 보증해줄 윤리단체를 구성하였다. 이유식에 대한 감리교 태스크 포스(the Methodist Task Force on Infant Formula)를 구성하여 이 역할을 맡겼다.
-의료전문가, 종교인, 시민지도자, 국제정책 전문가 등 10여명으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네슬레의 WHO 규정준수 내용을 공개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네슬레의 마케팅 활동에 대해 제기된 불만사항을 조사하도록 하였다.

네슬레는 수년 동안 비난 세력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 결과 비판여론과 불매운동을 확산시켰다. 그러나 네슬레의 꾸준한 노력 덕분에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네슬레가 비판세력과 대치한지 10년 만에 그리고 불매운동이 시작된 지 7년 만인 1984년 초 대부분의 단체에서는 불매운동을 중단한다는데 동의하였다.
네슬레의 손실액을 정확하게 추산하기는 쉽지 않다. 직접적인 매출 손실 외에도 많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네슬레보다 평판이 더 나은 기업으로 발길을 돌리게 만들어버린 점과, 크게 실추된 평판과 명성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 등이 더욱 견디기 힘든 손실일 것이다.
한가지 주목할 대목은 네슬레가 전세계에서 벌어들이는 매출액 중에서 이유식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3%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 작은 부분의 대외적인 이미지가 손상되어 다른 제품에까지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점이다.


[질문]

1. 네슬레와 같은 사업상 재앙은 애초에 어떻게 피할 수 있었겠는가?
2. 네슬레가 그 문제에 대해서 처음 알았을 때 어떤 행동을 취했어야 하는가?
3. 여러분 생각에 시민단체의 저항에 직면했을 대 회사로서는 그들의 주장을 들어주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겠는가? 공격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는가?
4. 네슬레가 PR 활동을 좀더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었는가? 만약 있었다면 과연 어떻게 이용했겠는가?
5. 여러분은 네슬레가 운수 사납게도 시범사례로 선택된 것뿐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여러분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자료정리 : e매니지먼트 윤리경영연구소 나상억 소장]
*자료출처 : <윤리경영> (로버트 F. 하틀리 지음/e매니지먼트㈜ 옮김/21세기북스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