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렴윤리인권 자료실
  • 청렴윤리인권 사례

청렴윤리인권 사례

[기본] 록히드 : 해외에서 자행되는 뇌물 제공

관리자 2010.10.05 13:40 조회 4573
록히드 : 해외에서 자행되는 뇌물 제공 1975년 9월, 프랭크 처치 상원의원이 의장으로 있는 다국적기업에 관한 상원위원회 심리에서는 방위산업체 록히드가 네덜란드, 이탈리아, 일본, 터키 그리고 그 밖의 국가에서 공공단체 직원과 정부 공무원에게 2억 달러 이상의 뇌물을 제공했다는 엄청난 사실이 폭로되었다. 시간이 지나 좀더 자세한 사실들이 드러날수록 국민들과 국회의원들의 분노는 커져만 갔다. 미국 주요 방위산업체와 방위산업계 전체의 도덕성이 심각한 비난을 받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미국 기업들의 도덕성까지도 비난 받게 되었다. 그 결과 1977년 해외부패방지법(FCPA : Foreign Corruption Practices Act)이 제정되었다. 스캔들 >>>왕족과의 거래 네덜란드 줄리아나 여왕의 남편인 버나드 공은 매우 존경 받는 인물이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네덜란드를 공격하자 군대와 함께 용감하게 싸웠다. 그리고 1944년 연합군이 네덜란드를 다시 점령했을 때 네덜란드 군을 지휘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전세계를 다니며 네덜란드 인들을 헌신적으로 격려했다. 그는 여러 위치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그 중에서도 세계야생생물기금(the World Wildlife Fund)을 설립하고, 네덜란드 군의 감찰감과 KLM 네덜란드 항공 Royal Dutch Airline의 이사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록히드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귀족이면서 사회에 봉사하고 헌신하는 인물의 전형이었던 버나드 공도 스타파이터(Starfighter)를 판매하기 위해 록히드가 돈으로 무장하고 로비를 해 오자 그만 넘어간 것이다. 이 계약에 총 1억5천만~2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액수가 걸려 있었다. 버나드 공과 록히드 사이의 계약은 록히드 영업사원으로 고용된 전 KLM 직원이 담당했다. 이 계약으로 버나드 공이 받은 커미션은 백만 달러였다. >>>일본 뇌물 사건 록히드가 관련된 일본 뇌물 사건은 1958년 일본 정부 공무원 쪽에 강력한 연줄을 가지고 있는 요시오 코다마라는 사람을 고용하면서 시작되었다. 그의 도움으로 록히드는 일본 에어포스 젯(Japanese Air Force Jet)의 계약을 따낼 수 있었다. 1972년, 록히드는 다시 코다마를 고용했다. 그러자 그는 전일본항공(All-Nippon Airways)과 13억 달러짜리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코다마는 1972~1975년 사이에 록히드로부터 9백만 달러를 가져 갔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당시 수상이던 다나카 가쿠에이와 전일본항공과 록히드 사이의 거래를 중재했던 다른 정부 공무원들에게 제공되었다. 1975년 8월, 미국 정부는 조사 결과 록히드로부터 2천2백만 달러의 뇌물을 건넸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또 상원조사위원회는 1976년 2월 록히드와 일본 정부 공무원 사이에 은밀한 관계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공식 발표했고, 다나카 수상은 곧 사퇴했다. 일본은 록히드와 체결한 수십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파기했다. 1976년 9월 15일, 코다마와 다나카를 포함한 18명이 록히드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 밖의 뇌물 비록 네덜란드와 일본 사건만큼 대대적인 조사가 진행되지는 않았고 이 사건들만큼 큰 충격을 주지는 않았지만, 록히드의 뇌물 사건은 다른 나라에서도 여러 건 발생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같은 나라에서 뇌물은 ‘일종의 살아가는 방식’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그 밖에 이탈리아(6천만 달러짜리 C-130s 계약을 따내기 위해 2백만 달러 지급), 스페인(130만 달러), 남아프리카공화국(9백만 달러), 그리스, 멕시코, 나이지리아, 터키, 콜롬비아에서도 뇌물 사건에 대한 증거가 있었다. 뇌물의 메커니즘 뇌물∙리베이트∙정치 헌금, 아니면 기부를 포함한 어떤 형태의 성의 표시든 간에 돈을 제공하는 행위를 통해서 그것을 받은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원하는 만큼의 영향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경우 간접적으로 건네는 방법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돈을 제공할 때는 주로 중개자를 이용한다. 이때는 주로 자회사를 이용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자회사의 회계 기록은 모회사의 것과 통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뇌물은 한 번도 제공받은 적이 없는 서비스와 제품에 대한 비용으로 위장되며, 자회사는 순전히 뇌물을 제공하는 기능만 하는 유령회사일 수도 있다. 모회사가 유령회사를 통해서 판매 커미션을 지불하면 아무런 기록도 남지 않고 모회사와 뇌물 수수자 사이에는 어떠한 직접적인 연결 고리도 없게 된다. 영업사원들을 통해 뇌물을 전달하는 방법은 좀더 일반적인 메커니즘이다. 이들은 완벽하게 합법적인 존재이고 심지어 그렇지 않더라도 비행기 같은 큰 규모의 거래 - 전체 계약에 비해서 상당히 낮은 비율을 차지한다 하더라도 - 에 대해서 그들에게 지급되는 ‘커미션’은 아주 큰 금액이 될 수도 있다. 해외 여러 나라에서 영업사원들은 개인적으로 뇌물을 제공하는 방법으로 거래를 성사시킨다. 대개 액수가 큰 커미션 - 일부는 제3자에게 전달되는 - 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그 액수가 영업사원이 제공한 서비스의 범위를 초과한 액수인지 아닌지는 무척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조사가 시작되다 상원의원 프랭크 처치가 이끄는 다국적 기업에 대한 분과위원회 심리에서 뇌물 사건의 전말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점점 확대되어 가는 스캔들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고 좀더 심도 깊은 조사를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미국증권거래위원회도 록히드에 대한 조사뿐만 아니라 다른 다국적 기업에 대한 조사를 강화했다. 미국 국세청은 300명의 공무원을 동원하여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회계장부도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록히드의 최고위 임원들이 뇌물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그리고 다른 다국적 기업들도 해외 뇌물 사건에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2억5천만 달러의 뇌물 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록히드만큼 큰 사건은 없다는 사실도 밝혀졌다(록히드 이후 최대 사건으로는 노드롭으로 3천만 달러, 엑슨 2천7백만 덜러였다. 또 다른 큰 사건으로는 레이시온∙GTE∙걸프 오일이 있었다.) 나쁜 소문들이 떠돌고 있었지만 국방부는 록히드와 수백만 달러짜리 주문 계약서를 계속 작성했다. 그리고 국회는 비리에 대한 응징으로 정부 계약을 철회하지는 않기로 결정했다. 이는 군사업계에서 록히드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보여 주는 확실한 증거였다(정부는 록히드가 계속 생존할 수 있기를 바랐고 드디어 회사 스스로 대출금을 갚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77년 국회는 뇌물 스캔들에 놀란 나머지 사업 거래를 정화시키고 해외의 여러 가지 뇌물을 금지하기 위해서 해외부패방지법을 통과시켰다. 록히드의 다니엘 J. 허튼 회장과 A, 칼 코치언 사장은 퇴진 압력을 받았다. 외부에서 영입된 경영진과 새롭게 개편된 이사회는 피해를 복구하고 손상된 기업 이미지를 회복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1979년 6월, 록히드는 일본에 제공한 뇌물을 ‘마케팅 비용’이라고 장부를 위조하여 사실을 은폐하려 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 받았다. 미국 세법에 따라 불법적인 뇌물이나 리베이트 비용을 위해서 돈을 빼돌리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 록히드는 또한 정부를 상대로 네 번의 사기와 네 번의 거짓 증언을 한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를 선고 받았다. 물론 해외 뇌물이 발생한 시점에는 해외부패방지법이 제정되지 않았으므로 뇌물 사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죄를 물을 수 없었다. -------------------------------------------------------------------------------------------------- 1977년 해외부패방지법 이법이 제정됨으로써 해외 정부 공무원에게 뇌물을 공여하는 행위는 형사상 범죄가 되었고 해당 기업과 임원에 대해서 엄청난 벌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뇌물 죄로 걸리게 되면 해당 기업은 1백만 달러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고, 개인에게는 1만 달러 벌금과 5년 동안의 징역 형이 선고될 수 있었다. 이 법이 제정된 이유는 미국 기업이 해외에서 거래를 할 때 좀더 높은 윤리 기준을 가지고 활동하기를 바라는 좋은 취지였지만, 강력한 반대 의견도 있었다. 반대자들 주장에 따르면 이 법은 너무 제한하는 부분이 많고, 회계상 요구조건도 무척 부담스러우며, 처벌이 몹시 엄격해서 혹시라도 기업들이 해외 진출을 꺼리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크게 비난 받는 부분은 경쟁력에 관한 것이다. 외국 공무원들에게 뇌물이나 기타 사례를 하는 행위를 금지하지 않는 국가의 기업에 비해 미국 기업들이 불리해질 수 있다. 그리고 전세계 많은 나라에서,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뇌물을 관행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비록 이 법안에 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미국의 높은 기술력으로 뇌물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러한 뛰어난 기술력이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스럽다. 이 법률 제정으로 큰 피해를 입은 업체들은 전기설비∙전기부품∙소비자용 전기제품을 제조하는 회사들이었다. -------------------------------------------------------------------------------------------------- 토의주제 해외에서 뇌물을 제공하고 난 후에 늘 이런 말을 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이러한 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해외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이 이러한 법적 규제 조치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복귀 1977년 10월, 로이 A, 앤더슨이 록히드의 회장 겸 CEO로 선출되었다. 그는 록히드에서 그 동안 최고재무책임자(CFO)로 근무해 왔다. 언제나 ‘노 코멘트’ 전략을 펼친 전 회장 허튼과는 반대로 앤더슨은 모든 사실을 솔직하게 드러내겠다며 개방 정책을 시행할 것임을 시사했다. 예를 들어 공장이 있는 지역 행사에 회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회사를 PR하기 위해 노력했다. 록히드는 1982년 확실하게 위기에서 벗어났다. 수입은 크게 증가했고, 특히 핵심 사업분야가 강화되었다. 주요 계약들도 새로 성사시켰으며 자본 구성도 이전과 다르게 개선되었다. 그리고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외부 감사원들이 회사 재무제표에 대해서 제한조건 없는 보고서를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회사는 10년이 넘는 운영 기간 중에서 최상의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1983년에는 수주 잔고가 78억 달러였다. 록히드는 연구개발 부분에 상당한 투자를 했다. 또한 5년간 지출 규모를 약 35억 달러까지 확대했다. 특히 놀라운 사실은 불법적인 행동을 전혀 하지 않고도 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분석 >>>록히드의 죄는 어디까지인가 해외부패방지법에서는 부적절한 현금 지급에 대해서 뇌물과 금품 강요 사이에 차별성을 두고 있지는 않다. 록히드는 미국 기업이 뇌물을 제공하지 않으면 해외 시장에서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많은 지원군을 얻게 되었다. 기업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 가운데 절반이 “뇌물 수수가 용인되는 나라에서는 뇌물을 제공함으로써 분명히 덕을 봤다”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뇌물을 제공하는 행위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각 나라마다 고유 기준이 있으므로 미국 기업들은 외국과 거래할 때 자신의 기준과 관습만 적용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 뇌물을 사용하면 일이 빨리 진척되므로 결국 뇌물을 사용하지 않을 때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들고 더 효과적이다. 게다가 어떤 나라에서는 뇌물을 사용하는 방법밖에 다른 대안이 없는 경우도 있다. ○ 뇌물을 주지 않는다면 미국 기업은 해외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즉 미국 기업들은 뇌물에 대해서 별다른 규제 조치가 없는 국가의 다국적 기업들과 경쟁할 수 없게 된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의 생존이 위협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록히드는 뇌물 수수와 부패 혐의로 중형을 선고받아야 하는가? 록히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할 뿐만 아니라 록히드 최고 경영진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행위가 잘못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비록 일부 국가에서는 뇌물과 매수행위가 관행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또 어떤 나라에서는 자국의 다국적 기업이 뇌물을 주는 행위에 대해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부분의 미국 시민들은 뇌물 수수를 혐오한다. 아마도 록히드를 판단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록히드가 다른 미국 기업들의 거의 10배에 해당하는 뇌물을 제공했다는 명백한 사실이다. 일부 사람들은 적당히 용서할지도 모르겠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극도로 싫어할 수도 있다. 뇌물이란 어떤 상황에서건 그리고 어떤 액수이건 무조건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 이들은 자신들은 비열하게 그런 방법을 사용하고도 부하 직원들에게는 더 엄격한 도덕 기준을 요구하는 최고 경영자들의 도덕적 리더십의 부재를 비난한다. ○이들은 뇌물을 도덕적 붕괴의 신호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해외에서 제공하는 뇌물 탓에 사회에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기업의 이익보다 많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결국 언젠가는 도덕성 결여에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게 될 것이다. >>>뇌물을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 뇌물을 제공하는 상황이 성립될 때는 그것을 부추기는 묘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모든 기업들이 이런 유혹에 빠지는 것도 아니고, 어떤 상황에서나 뇌물이 효력을 발휘하는 것도 아니다. 일반 기업이나 개인보다는 정부가 수천만 달러 제품을 직접 구입하거나 또는 정부 공무원이 매매 계약 교섭자로 나서는 경우 뇌물 수수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경쟁하는 기업이 얼마 안 되는 과점 시장에서는 국제적으로 뇌물을 제공하는 경우에는 비가격 경쟁이 된다. 해당 국가에 생산 시설을 갖춘 다국적 기업은 영업 조직만 갖추고 있는 기업보다 뇌물을 요구하는 압력에 더 오래 견딜 수 있다. 후자의 경우 대개 외국의 영업사원에 의존하므로 이런 상황에서는 영업사원이 판매 커미션으로 가장하여 돈을 받은 다음 뇌물로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질문 1. 록히드의 최고 경영진들이 왜 뇌물을 제공하고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2. 대부분의 다른 사건들과 달리 이 사건에서는 부하 직원이 아니라 최고 경영진들이 주로 비난을 받았다. 당신은 최고 경영진들이 이 사건에 눈에 띄게 연관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3. 뇌물과 금품 강요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윤리적 차이가 있는가? 4. 최고 경영진은 부하 직원이 저지른 뇌물 제공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가? 5. 1970년대 초반 일어난 뇌물 사건에 대해서 록히드의 입장을 변호해 보라. 가능한 한 설득력 있게 주장을 펼쳐 보라. 실전연습 1. 당신은 록히드에 뇌물 사건이 터지고 나쁜 소문만 무성해지자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새롭게 회사에 부임한 최고 경영자이다. 이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 어떤 방법을 시도할 것인가?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라. 팀별 토론 연습 1. 해외부패방지법에 대해 토론해 보라. [자료정리 : e매니지먼트 윤리경영연구소 나상억 소장] *자료출처 : <윤리경영> (로버트 F. 하틀리 지음/e매니지먼트㈜ 옮김/21세기북스 출간)
click go online
click cheat on my husband online
buy viagra where generic viagra levitra and cialis pills viagra speedy delivery
reasons for abortion redirect search pills
free discount prescription cards link prescription card discount
bystolic savings card program go is there a generic for bystolic
cialis coupon internet drug coupons discount coupons for cialis
doxycycline doxycycline doxycyc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