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T의 칠레 내정간섭 행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1970년 10월 24일 아옌데 박사가 칠레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로써 칠레에 최초로 마르크스주의 정권이 들어서게 됨으로써 한 때 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했던 칠레에는 사회주의 철학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1972년 3월 21일과 22일, 미국의 저명한 칼럼리스트인 잭 앤더슨은 미국의 ITT(International Telephone and Telegraph)사로부터 입수한 비밀문건의 개요를 공개했다. 이 문서에 의하면 ITT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1970년 칠레 대통령 선거에서 아옌데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아옌데가 당선되자 1973년에는 그를 축출하려다 실패한 사실이 드러났다. ITT는 칠레에 있는 자사의 재산을 칠레 정부가 징발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칠레의 내정에 깊숙이 간여했다.

[칠레에서의 ITT]
1970년 3월 22일 칼럼니스트 잭 앤더슨은 ITT가 칠레의 국내 문제를 조종했으며 그 일에 관해서 CIA와 백악관과도 긴밀한 연락을 유지했다는 내용을 폭로했다. 앤더슨에 따르면 ITT는 아옌데가 칠레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하도록 반대 활동을 하고, CIA와 함께 경제 혼란을 야기시키고,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도록 선동했다. 그리고 아옌데를 저지하는데 사용해 달라고 백악관에 100만 달러를 제공하기도 했다.

[칠레의 ITT 자회사]
칠레는 인구도 적고 경제적 전망도 그리 밝은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ITT는 칠레에 큰 관심을 가졌다. 칠레에는 칠레전화회사(CTC), 스탠더드전기회사(SEC), 그리고 2개의 쉐라톤 호텔 등의 ITT 자회사들이 진출해 있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전화회사의 수익성이 매우 높아서 연간 1천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ITT의 칠레 자회사들이 전세계 ITT의 자산과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한 것이었다.
ITT의 칠레 자회사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았지만 ITT는 칠레 정부가 ITT의 칠레 내 자산, 특히 전화회사를 국영화하고 실제 가치보다 훨씬 못 미치는 가격에 인수하려고 할까봐 걱정하고 있었다(칠레의 이웃나라인 페루에서는 이미 그런 일이 있었다). ITT는 마르크스주의자인 아옌데 박사가 대통령이 됨으로써 그러한 사태가 현실로 나타날까봐 걱정했던 것이다.

[살바도르 아옌데 박사]
1970년 대통령 선거에서 인민연합 후보인 아옌데는 36%, 전 대통령이었던 호르헤 알렉산드리는 35%, 새로운 기독교민주당 후보인 라도미로 토믹은 17%를 얻은 것으로 나타나 어느 후보도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칠레 헌법에 따라 대통령은 7주 후 국회의 표결로 결정되어야 했다(이 7주 동안 앤더슨이 폭로한 ITT 메모의 대부분이 작성되었다). 1970년 10월 24일 칠레 국회는 아옌데를 새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아옌데 대통령은 광범위한 토지 개혁과 외국 자본이 장악하고 있는 기간산업에 대하여 급속한 국유화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칠레 정부와 ITT 사이에 칠레전화회사(CTC)의 인수를 위한 협상이 시작되었다. 회사의 가치평가를 두고 양측 간에는 큰 견해 차이를 보였다. ITT는 회사의 가치를 1억5천3백만 달러로 제시했지만, 칠레 정부는 240만 달러를 제시했다. 칠레 정부는 국제 분쟁조정단체에 조정을 의뢰하자고 요구했으나 ITT 측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에 ITT는 국제 감사회사에 조정을 의뢰하자고 요구했으나 이번에는 칠레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미국 주재 칠레 대사가 앤더슨의 칼럼을 공개했고 이로써 전세는 역전되기에 이르렀다.

[ITT의 칠레 내정 간섭에 대한 구체적 증거]
앤더슨이 ITT 파일에서 입수한 비밀 문건에는 ITT가 1970년 칠레 대통령 선거에서 아옌데의 당선을 막고, 1973년에는 대통령 직에서 물러나게 하기 위해 CIA와 손잡고 작전을 진행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앤더슨의 칼럼이 물의를 빚자 미국 상원외교위원회는 다국적기업 분과위원회라는 특별 분과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사태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1973년 6월 21일 분과위원회에서는 ITT가 ‘기업으로서는 도가 지나친 행동을 했다’는 요지로 약 1,000쪽 분량의 보고서를 발행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만일 좌파인 아옌데 박사를 패배시키려던 계획이 제대로 실행되었다면 ‘유혈 참사에 내전까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하고 있었다.
이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ITT 최고위층은 칠레 대통령 선거 결과를 조작하기 위해서 CIA와 손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이런 와중에 이 회사는 기업으로서는 넘어서는 안될 선까지 넘고 말았다. CIA를 개입시키기 위해서 ITT가 미국 정부에까지 압력을 넣으려고 한 행동은 사적인 이익보다 국가적인 이익에 따라야 한다는 미국 대외정책의 기본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결과]
칠레에서는 앤더슨의 폭로로 ITT와 칠레 정부 사이에 진행되던 협상이 중대한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아옌데 대통령은 이 상황을 최대한 이용했다. 앤더슨의 칼럼이 발표되고 일주일 후 칠레 국회에서는 ITT와 CIA의 과거 활동 내역을 조사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UN 경제사회이사회는 개발도상국에서 다국적기업의 역할과 영향력을 분석하기 위해 연구회를 설립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미국과 칠레 사이의 관계는 악화되었고 1973년 8월 칠레 언론이 대대적인 반미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심지어 미국은 칠레 경제의 마비 사태를 불러온 전국 규모의 트럭 운전사 파업과 다른 노조 파업에도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1973년 9월 11일 군사 쿠데타로 아옌데 대통령이 사망하자 전세계의 관심은 더욱더 칠레에 집중되었다. 피노체트 군 참모총장이 이끄는 군사 정권이 칠레를 장악했다.
칠레전화회사(CTC)에 대한 비용을 지급받지 못한 ITT는 칠레 해외민간투자공사(OPIC)를 상대로 9천250만 달러의 소송을 제기했다. 지루한 법정 싸움이 계속되었고 1975년 1월 강제적인 조정에 따라 390만 달러에 현금 지급 조건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 금액은 ITT가 희망하던 배상 금액에 훨씬 못 미치는 적은 액수였다.
미국의 다국적기업들이 개발도상국의 내정에까지 간섭하려 한다는 사실은 전세계적으로 비난을 받게 되었다. 심지어 ITT의 건물이 공격받는 일조차 발생하게 되었다. 1973년 9월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ITT 건물이 심각하게 파손되었다. 이틀 후에는 뉴욕 매디슨가에 있는 ITT 건물의 라틴 아메리카 사업부에서 시한폭탄이 터져 사무실 4개가 파괴되기도 했다. 1973년 10월에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ITT 창고에 불이 나서 1천2백만 달러 가량의 피해가 발생했다.
ITT의 칠레 사건은 좀더 장기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ITT의 활동에 부정적인 여론과 록히드 같은 다른 대기업의 뇌물 스캔들 때문에 미국 의회는 1977년 해외부패방지법(FCPA)을 통과시켰다.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이 법은 다국적기업과 외국 공무원 그리고 정치인 사이에 부정적인 거래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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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Box] 기업의 최고경영자에게 도덕적인 행동을 강요할 수 있는가?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에게 도덕적 행동이나 리더십에 대해서 어느 정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어느 정도 사회에 대하여 책임이 있는가? 아니면 기업 경영이라는 분야에서는 그저 정글의 법칙이나 다윈의 적자생존 논리만 생각해야 하는 것인가?
오늘날 기업의 경영층은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행동을 실천하게 되어 이타주의와 양심에 따라 생활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진보된 사회를 이루었는가? 비록 정부의 법과 규제가 완화되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업들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외국에서 사업을 하는 경우라고 해도 말이다. 기업의 임원들 중에서는 시민이 누려야 하는 최선의 이익이 곧 자신과 기업의 최고 이익에도 합치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편, 또 다른 사람들은 규제 조치가 없는 것을 기회라 생각하고 그저 이용할 생각만 하기도 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여전히 단기 수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 그런데 사회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이런 태도가 항상 최선은 아니다. 시민들을 좀더 고려하는 태도를 가질수록 장기적으로 회사 발전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데도 대부분의 주주들과 채권자들은 즉각적인 이익을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토의주제]
다국적기업이 좀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태도를 갖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물론 이 제안 내용은 바람직하고 실천 가능한 것이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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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ITT는 칠레 내정에 간섭하는 도박을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미국 상원분과위원회의 비난을 받은 것 외에도 세계 곳곳에서 상당한 재산 피해를 입었다. 또 칠레에서 국가 징발로 재정적인 손실을 입은 것에 대해서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다.
일반적인 기준에서 본다면 ITT의 행동은 비난받을 만하다. 그 결과 대외적인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었고, 재산 피해는 수백만 달러에 달했으며, 보험 처리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최대 피해자는 칠레이다. 그 중에서도 목숨을 잃은 아옌데 대통령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마르크스주의자이긴 했어도 총명하고 헌신적인 시민의 종복 아옌데가 약속한 빛나는 미래를 잃게 된 칠레 국민들에 비하면 고작 수백만 달러의 손해를 입은 ITT는 아무 것도 아니다.
한편 ITT에게만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 정부-특히 CIA, 장관, 대통령까지도-도 외국 정부의 내부적인 문제에 쓸데없이 깊이 간여했다. ITT와 미국 정부는 아옌데를 저지한다는데 의기투합했으며 그를 제거하는데도 뜻을 같이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들이 실행한 방법은 상식적이고 올바른 행동과 거리가 멀었다.
물론 여타의 다국적기업들뿐만 아니라 ITT도 정치적이고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서 자사의 최고 이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분명히 로비도 포함된다. 로비와 관련된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ITT는 외국의 내정에 간섭하려고 지나치게 은밀한 방법을 사용한 결과 화를 자초하고 말았다.


[질문]
1. ITT는 실제로 비윤리적인 행동을 했는가? 왜 그렇다고 보는가? 아니면 왜 그렇지 않다고 보는가?
2. <해외에서 활동하는 회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재산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 이 내용에 대해 논평해 보라.
3. ITT가 칠레 시장에서 CIA와 미국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팀별 토론연습]
ITT 회의실에서 칠레 문제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의견이 두 갈래로 나뉘어졌다. 경영진을 옹호하는 그룹은 공격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른 그룹은 ITT 재산을 일부 빼앗기더라도 좀더 부드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쪽 입장에 서서 토의해 보자.

[자료정리 : e매니지먼트 윤리경영연구소 나상억 소장]
*자료출처 : <윤리경영> (로버트 F. 하틀리 지음/e매니지먼트㈜ 옮김/21세기북스 출간)